HOME > 인재채용 > 입사후기 > 수습공채
입사 후기 (경제부 금융팀 김지훈 기자)
작 성 자 : 인재개발부 등 록 일 : 2011-05-29 조 회 : 7419

 

경제부 금융팀 김지훈 기자

 

 

한겨레, ‘자유’라고 쓰고 ‘부자유’라고 읽는다

  

‘타락한 신학생’. 저는 한겨레 실무평가 전형에서 저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저는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에 갈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신과 인간, 인문학과 과학, 기도와 혁명을 넘나드는 개신교 신학의 폭넓음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서의 폭을 넓히고, 한국 개신교의 어두운 면을 알아가면서 저의 꿈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밖에 구원 없다’는 개신교의 배타주의적 구원관에 대해선 처음부터 의심해왔습니다. 하지만 교세확장,정치편향설교,성폭행을 일삼는 목사들을 보면서는 ‘교회 안에 구원 있나’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포화상태를 넘어선 교회 숫자, 찍어내듯 초과공급되는 신학생들, 좁디좁은 신학교 교수 임용 관문을 보며 신학자의 길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겨울, 현실은 더 이상 저의 회의를 머릿속에만 두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출석하던 교회에서 한국 개신교 역사상 최고액인 2,500억 교회당 건축을 선언했습니다. 자기부인과 불편함이라는 좁은 길을 벗어나 크기와 영향력이라는 큰 길을 활보하기 시작하는 교회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와 싸우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신학자의 꿈을 강남역 길거리 어딘가에 버렸습니다.

 

눈을 돌려 학부 시절 교양수업으로 채워들었던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할까 알아보았습니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철학과 교수님이 교수 자리를 잡지 못해 정신이 이상해진 철학박사가 많다고 저를 돌아세우셨습니다. 저는 학문이 주는 즐거움도 좋지만 밥의 지엄함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일반회사에 취직할 수도 없었습니다. 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과 한국현대사를 공부하며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어왔습니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 자본주의에 충성하는 회사원이 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실적 필요 때문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접어두기에 저는 아직 젊었습니다.

 

신학과 인문사회학, 그리고 밥벌이라는 원이 그려지고 지워지면서 남긴 흔적이 기자라는 교집합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겨레라는 교집합이었습니다. 리영희 선생님의 『대화』를 읽을 때, 선생님이 한겨레 창간호를 보며 흘리신 감격의 눈물에 밑줄을 그어두었습니다. “40년 전에 박정희를 비판하지 못한 신문이 신문 아니었듯이 지금 이건희를 비판 못하는 신문도 신문이 아니다”라는 김상봉 교수의 일갈을 들었을 때 집요한 삼성 비자금 보도로 2년 넘게 삼성 광고가 끊겼던 한겨레를 떠올렸습니다. 40, 50, 60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불온하게 살자는 한겨레 논객들의 칼럼을 가위로 조심스레 오려 스크랩했습니다. 이런 감동적인 마주침들은 제 걸음이 한겨레로 향하게 하는 표지판이 되어주었습니다.

 

한겨레라는 이름을 제 이름 앞에 붙이는 것의 무게가 아직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홍세화 선생님의 말씀대로, 한겨레 기자들은 자아를 실현하는 일로 밥을 버는 소수의 자유인들입니다. 자유인 모임의 일원이 되는 특권을 누릴만한 능력이 제게 있을까하는 의심에 평가위원께 저의 무엇을 보고 뽑으셨는지를 물은 적도 있습니다. 자유인이 되는 길은 스스로를 노예로 삼고 혹독한 자기훈련을 부과하는 길밖엔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보도록 ‘한겨레는 자유’라고 쓰고, 저 자신을 향해선 ‘부자유’라고 읽겠습니다. 그 부자유가 저와 한겨레를 자유롭게 해주리라 믿고 그 안에서 싸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