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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후기 (문화부 대중문화팀 박보미 기자)
작 성 자 : 인재개발부 등 록 일 : 2011-05-29 조 회 : 9979

 

문화부 대중문화팀 박보미 기자

 

암에 걸려 겨우 스물셋에 석 달의 시한부 여생을 선고받은 여자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10가지’ 목록을 하나씩 실행합니다. 머리 모양 바꾸기,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 사랑하기, 두 딸이 18살 될 때까지 들려줄 생일축하 메시지 미리 녹음하기… 영화 <나 없는 내 인생>의 주인공처럼 저만의 ‘버킷 리스트’를 가끔 생각해 봅니다. 한 자리를 넘어가지 않는 항목의 개수가 의외로 적어서, 이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헷갈려하면서 말입니다.
 
기자 ‘되기’. 밥벌이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이래 목록의 제일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 말이었습니다. 마침표 뒤에는 괄호를 그려 ‘한겨레’ 세 글자를 투명한 글씨로 몰래 적어뒀습니다. 기자가 되는 것도 쉽지 않은 목표인데 심지어 한겨레라니, 실현하기 힘든 몽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바랄수록 더 이루기 힘든 법이라고, 세상에는 바람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더 많다고, 누군가 비웃을 것만 같았습니다. 한겨레를 꿈꾸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시간을 뒤로 보내고 거짓말처럼 ‘한겨레 기자’로 살아갈 자격을 얻게 된 마음엔 기쁨보단 걱정이, 설렘보단 부담이 앞섭니다. 한겨레 기자이기 때문에 더 똑똑하고, 착하고, 성실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입 밖으로 거대한 포부를 꺼내는 일은 왠지 어색합니다. 왜 기자가 되고 싶은지, 어떤 기자가 되고 싶은지 누가 물을 때마다 “하고 싶은 일이라서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착하고 똑똑한 기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가볍게 답하곤 합니다. 역사, 민주주의, 인권, 정의 같은 묵직한 단어로 멋들어진 포부를 말하는 게 제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저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지친 몸 쉬어가라며 그늘 좋은 곳에 놓인 의자같은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기자란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갈 제 역할이, 외롭고 슬픈 세상에서 눈물짓는 누군가를 편히 쉬게 돕는 의자이기를 바라봅니다. 가난으로 차별로 고달픈 사람들을 먼저 보듬는 곳. 그들이 쉴 수 있는 의자. 제게 한겨레는 그런 곳입니다. 
 
선뜻 내리는 확신은 불안합니다. 확신에 겨워 살아가기엔 다가올 날들 가운데 예기치 못한 변수들이 생긴다는 것을 압니다. 한겨레 기자로 살아가는 동안 어떤 식으로든 힘들고 흔들리는 날들도 올 것입니다. 10년 뒤, 15년 뒤의 제 모습을 함부로 자신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확신 없는 미래 앞에서 다만 단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불확정의 고민들마저도 함께 풀어낼 수 있는 곳이 한겨레라는 믿음입니다. 든든한 선배들, 속이 꽉 찬 동기들을 보며 확신은 더 굳어졌습니다. 지난 시간 그다지 진지하지 못한 인생이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선배, 동기들의 치열함을 배워가고 싶습니다.
 
목록의 첫 줄, 기자 ‘되기’.(한겨레)를 뿌듯한 손길로 쓱쓱 지운 자리에 이제 평생 노력해야 할 다음 항목, ‘좋은 기자로 살기’를 적어 넣고 여러 번 밑줄을 긋습니다. 착한 기자, 좋은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한겨레니까요.